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될 최악의 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헌적 계엄은 불과 6시간여 만에 국회의 단호한 결의로 해제되었고,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전 세계에 증명한 역사적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계엄 선포의 배경과 준비 과정
사전 모의와 준비 작업
검찰 수사 결과,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최소 2024년 3월부터 계엄을 모의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전사는 내란 9개월 전인 2024년 3월부터 국회 헬기 착륙 지점을 사전 조사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라며 계엄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실제로는 계엄의 핵심 설계자 역할을 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의 반대와 윤 대통령의 독단
계엄령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19명의 위원 대부분이 이 결정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조차 이 과정에서 배제되었으며, 김용현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위헌적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의 내용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야당의 정부 탄핵과 예산 삭감을 계엄 선포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이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한 위헌적 조치였습니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임명
윤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인 박안수 육군 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박 사령관은 육사 46기 출신으로, 계엄법이 정한 국무회의 심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밤 11시: 초헌법적 포고령 발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의 내용
박안수 계엄사령관은 밤 11시를 기해 6개항의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습니다:
- 정치활동 전면 금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 언론 통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 의료진 강제 복귀: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야 한다"
- 파업·집회 금지: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이 포고령은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협박성 문구를 포함했습니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을 전면 무시한 초헌법적 조치였습니다.
국회 봉쇄와 계엄군 투입
경찰의 국회 출입 통제
계엄 선포 20여 분 후인 밤 10시 50분부터 경찰이 국회 외곽문을 폐쇄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헌법 제77조에 보장된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헬기를 통한 계엄군 대규모 투입
밤 11시 48분부터 이튿날 오전 1시 18분까지 24차례에 걸쳐 헬기를 동원하여 무장한 계엄군 230여 명이 국회 경내에 침투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50여 명이 담장을 넘어 추가로 진입해 총 280여 명의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하려 했습니다.
국회의사당 진입 시도와 물리적 충돌
계엄군은 국회의사당 정현관과 후면 안내실을 통한 진입이 막히자 망치와 소총으로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으로 난입했습니다. 국회 직원들과 의원 보좌진들은 사무실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소화기를 분사하며 이들의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했습니다.
CCTV에는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3층 중앙홀로 접근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이를 저지하는 모습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 동시 장악 시도
계엄 선포 6분 만에 선관위 진입
계엄군은 국회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동시에 진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불과 6분 만인 밤 10시 30분에 계엄군 10여 명이 선관위 과천 청사에 도착했습니다.
서버실 침입과 전산 장비 촬영
계엄군은 선관위 당직자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통합선거인명부를 관리하는 서버실에 침입하여 전산 서버를 촬영했습니다. 계엄 선언 종료 2분 만인 밤 10시 31분에 전산실에 진입한 것으로 보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총 297명의 계엄군이 선관위 과천 청사(110여 명), 수원 선거연수원(130여 명), 관악 여론조사심의위원회(47명) 등에 투입되었는데, 이는 국회 진입 계엄군보다도 많은 규모였습니다.
체포 명단과 민주주의 수호 인사들
14명의 체포 대상자 명단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김용현 장관으로부터 받은 14명의 체포 명단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달했습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 우원식 국회의장
-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 정청래 법사위원장
- 김명수 전 대법원장
- 권순일 전 대법관
- 조해주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한동훈 대표의 후속 추가
흥미롭게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최초 명단에 없었지만, 계엄 선포 후 한 대표가 비상계엄 반대 입장을 밝힌 직후 **"한동훈 추가합니다"**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우선 체포 지시
계엄 해제 결의가 임박한 12월 4일 오전 0시 40분경, 여인형 사령관은 이재명 대표,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최우선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 의장은 0시 47분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고, 결의안은 오전 1시 통과되어 체포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국회의 신속한 대응과 계엄 해제
우원식 국회의장의 리더십
우원식 국회의장은 계엄 선포 직후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습니다. 우 의장은 담장을 넘어 국회에 진입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야 의원들의 국회 집결
계엄군의 물리적 봉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속속 집결했습니다. 12월 4일 오전 0시 47분 우원식 의장이 비상계엄령 해제를 위한 본회의를 개회할 때까지 190명의 의원이 모였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18명의 용기
특히 주목할 점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중 18명이 계엄 해제에 찬성표를 던진 것입니다.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가 당사에서 의원총회를 열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12월 4일 오전 1시: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전원 찬성으로 가결
오전 1시,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상정되었습니다. 재석 190인 전원이 찬성하여 결의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 순간 국회의사당에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우원식 의장의 선언
우 의장은 가결 직후 "국회의 의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계엄군 철수 지시
우 의장은 "국회 경내에 들어와있는 군경은 당장 국회 바깥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력히 지시했고, 계엄군은 점차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4시 20분: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언
국무회의를 통한 해제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0분경 담화를 발표하여 계엄 해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새벽이라 국무회의 정족수가 미달되었지만, 오전 5시 03분 한덕수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려 계엄 해제가 의결되었습니다.
6시간의 기록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불과 6시간여 만에 해제되었습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최단시간 계엄이자, 국회의 견제 기능이 완벽히 작동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
국회 앞 시민들의 집결
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KBS 추산 약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국회 정문 앞에 집결하여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애국가 제창과 민주주의 염원
계엄이 해제되자 국회 앞 시민들은 애국가를 제창하며 계엄 해제를 환영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사후 책임 추궁과 법적 조치
내란죄 수사 개시
계엄 해제 직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 등을 내란죄로 고발했습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탄핵소추안 발의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으며,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탄핵소추안이 제출되었습니다.
김용현 장관의 사의 표명
사태의 핵심 책임자인 김용현 장관은 12월 4일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다"며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민주주의 평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숙함 입증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전 세계에 입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6시간 만에 위헌적 계엄을 무력화시킨 국회의 견제 기능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건
현직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결의로 무력화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교훈과 의미
민주주의 제도의 견고함
12.3 비상계엄 사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헌법과 계엄법에 명시된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이 실제로 작동했고, 이를 통해 위헌적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시민 의식의 성숙
국회 앞에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과 담장을 넘어 국회에 진입한 의원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시민 의식의 성숙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는 지켜지지 않으며,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역할
계엄 선포 상황에서도 언론들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달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계엄사의 언론 통제 시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가 지켜진 것입니다.
결론: 민주주의 수호의 역사적 승리
2024년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의 6시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게 가장 위험했지만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 선포 시도는 실패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하고 견고한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용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언론의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헌법과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수호의 승리였습니다. 이 사건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입니다.
본 글은 공개된 언론 보도와 국정감사 자료, 검찰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으며,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전 과정을 시간순으로 상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